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갔다가 서울로 돌아왔을 당시
궁궐이 모두 불타버려서 거처할 왕궁이 없어서 왕족의 집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완전했던
월산대군가를 행궁으로 삼아 거처하게 된 것이 덕수궁의 시초이다.
1611년(광해군 3)에는 이 행궁을 ‘경운궁(慶運宮)’ 이라 하였다.
경운궁의 정문은 원래 정남쪽의 인화문(仁化門)이었으나,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다포식 우진각지붕(隅·閣··:네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건물.
귀찮이즘이 발동하여 두서없이 옮긴 글 먄^^*
옮겨 온 사진
대한문 궁궐의 정문이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고종이 외국 공사들과 접견하는 모습 연극배우들의 표정연기 또한 볼만 하였음
아관파천? 역사시간에 시험 문제도 잘 나왔던 걸로 기억함.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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