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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의 삶 / 칼번스타인

수수 꽃다리 2013. 3. 9. 13:56

 

힐러리의 삶

 

 

 

본문에서...

 

백악관 이라는 곳이 호시탐탐 기사거리를 노리는 언론에 둘러싸인 금으로 만든 새장 같은 곳이기에 그러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르윈스키사건은 촉매제일 뿐이다.

그들의 결혼생활 내내 따라다렸던 수많은 위기의 순간들이 그랬던 것처럼

추문으로 얼룩진 대통열 탄핵 또한 본질적으로는 그녀 자신과 이들의 부부관계에 의해 불가피하게 일어난 사건이었다.
르윈스키는 그저 가장 최근에 나타난 촉매제일 뿐이다.

힐러리 본인이 내렸던 선택과 타협이 대통령 탄핵의 직접적 원인이 된 것으로서

사실 이들 부부의 성공에 따른 반대파의 적개심 따위는 그다지 주된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헐러리가 빌과 이혼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가 최악의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품위를 지키며 의연하게 처신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관계가 균형을 이룰때면 그들은 서로를 칭찬했다.

그들의 동맹관계가 빌의 리더 십의 원천이었어요

그녀가 닻이라면 그는 돛이었죠 그는 이상주의자였고 그녀는 현실주의자 였으며 그녀는 전략가였고 그는 전술가였어요

빌과 힐러리가 신중하면서도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친구뿐 아니라

 

생각과 언어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이를 음악처럼 들리게 하는 재주로 나를 놀라게 한다.

나는 아직도 그가 생각하는 방식과 보이는 방식을 사랑한다. 

 

클리턴은 본능에 따라 목적을 이루기 보다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편이였습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빠뜨리지 않고 모두를 설득해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지요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위해 몇 달이라는 시간도 기꺼이 할애한다. 이에 반해 힐러리는 적들을 만나는 즉시 차단하는 쪽이다.

 

 

 

그는 웰즐리대(Wellesley College)
웰즐리에 위치한 여자 명문대학교르 거쳐 예일대 법대를 나왔다.

함께 예일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아칸소 주지사 시절을 거쳐 마침내 백악관에 입성하기까지의 22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들 부부는 각자의 경험과 전문 분야, 그리고 각기 다른 성장매경이 만나 끊임없는 토론으로 연합과 조율을 거쳐

매우 독특한 자신들만의 정치관을 완성했다.
이들은 서로에게 있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인생의 동반자였다.
지적인 부분이나 정치적 감각에 있어서는 힐러리가 클린턴에 뒤처지는 감이 있었지만  빌에게 있어서 히러리는

 어느 면에서 보나 최고의 정치 파트너 였다.
 빌은 정책이나 전략, 이데올로기 그리고 야망의  구체적인 내용 하나하나까지 힐러리와 상의하려 들었다.


힐러리는 아내로서 변호사로서 또한 클린턴의 정치생명을 이어준 독특한 위치의 전략가로서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빌과 힐러리가 항상 이야기하는 이들의 여정은 낭만적인 동시에 냉혹한 야심으로 가득했는데
그들이 생각과 이상을 바탕으로 사회의식을 확장시키고자 정치라는 거대한 광야를 지나는 기나긴 여행을 뜻했다.
이들의 열정과 목적의식은 남편 한 사람만의 성곡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였다.

남편과 아내 모두의 성공에 대한 가능성의 모색으로서 미국의 역사를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덕분에 클리턴 부부가 정상을 향해 가는 길에는 과거 어느누구보다도 많은 반대파와 적들이 들끓었고,
이들은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무릎을 끓고도 남았을 굴욕이나 공격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
결국 이들의 '여정'은 현대 미국의 역사상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어만과도 같은 것이였다.


남편이 나이들어 점점 나이들어 퇴보할수록 오히려 그녀는 점점 더 자유 부방한 정신의 소유자가 되어갔다.
감성이 풍부해졌고 분석적이었고 또한 영적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대담해질 때도 있었다.

어린시적 힐러리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인정받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했다.
그러나 더 자라서는 아버지의 태도 때문에 수년 동안 분노를 삭이며 살아야 했다.

 

빌이 작은 연못에서 큰 물고기가 되어가는 동안, 그녀는 같은 물속에서 수영하는 법을 배웠다.

그곳의 체제에서 아웃사이더이던 힐러리는 남성 우위적인 법조계를 자극했고 사람들은 이 점을 주목했다.

힐러리리는 자신과 남편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며 자신만의 것을 개발해나갔다.

빌이 뛰어난 직관과 타협을 통한 정치로서 사회문제에 접근해 나갔다면

힐러리는 제각적인 실영성 여부로 그 문제를 다루는 실천적 선수라고 할 수 있었다.

우연이건 계획했던 간에 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모혐적 사업을 통해 통합을 이룩해 나가고 있었다.

 

"상원의원이 된 퍼스트레이디

내 평생 가장 힘들었던 결정은 

빌과 결혼생활을 지속하기로 한 것과

뉴욕 주에서 상원의원에 출마키로 한 것이었다."

 

어린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한 뒤에도 힐러리는

모든 일의 중심에 있기위해 열성적으로 참여하며 처절할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았다.

가족 간이든 자신이 속한 세대 속에서든 정치판에서든 역사적인 순간에서든...

그녀는 그런 것을 위해 뜨겁게 살아왔다.

한 발자국이라도 스스로 물러나 수동적이 되는 법이 없었다.

위대한 정치가의 특성은 신념에 대한 일관성과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불굴의 정신, 그리고

지도력을 대담하게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정체성의 인식이다.

 

이 주일 대출과 반납 연기 일 주일을 이틀  덜 채우고

나는 오늘 주말 근무함서 이 책 끝 페이지를 넘기고 겉장을 덮었다.